왕지원은 지난 몇 년간 인간, 예술 그리고 기술 ‘사이’의 조형적 관계성을 사이보그 신체를 통해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번에 출품한 <Source of Z>도 이러한 작업의 한 결과물이다. “Z”눈 작가 자신을 지칭하는 기호이다. 제목에서 엿 볼 수 있듯이 작품에는 작가자신의 내면적 상황이 반영되어있다. 왕지원의 주된 관심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조형적 표현력에 있다. <Source of Z>에서 기술은 뒤로 밀려나가고 조각이 앞서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물론 왕지원이 기술의 문제를 소홀이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업의 과정에서 기술에 대한 고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조형적 관점에서 보자면 왕지원은 기술과 예술 사이에 드러나는 긴장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예술과 기술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서양의 경우, 그리스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 까지 예술과 기술에 엄격한 분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예술에 해당하는 용어는 없었고, 단지 제작 전반을 의미하는 ‘테크네(techne)’, 굳이 번역하자면 ‘기술’ 이란 용어만 있었다.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테크네’는 라틴어 ‘아르스(ars)’로 번역 되었을 뿐, 그 의미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예술과 기술의 분리는 18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파인 아트(Fine Art)’라는 용어는 유용성과 기능성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과 구분되어 섬세하고 아름다운 기술, 즉 예술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실상 근대 예술개념은 기술과 예술의 분리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현대예술,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예술은 흥미롭게도 예술과 기술이 통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은 상상력의 힘을 극대화 한다. 기술이 예술을 흡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이 예술의 재현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지원의 <Source of Z>도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진 조형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Source of Z>에 기술적 프로그램과 메커니즘이 강조 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강조의 핵심은 무엇보다 조형적 표현력에 놓여있다. 작가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여 만든 사이보그 형태가 단순히 기술적 제작물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체험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나타난 조형적 표현성을 확연하게 읽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Source of Z>의 미묘한 얼굴 표정과 이중적 몸짓을 보자. 평범, 낙관, 체념, 관능 등이 서로 교차된 얼굴 표정이다. 몸짓은 어떠한가? 가까이 다가갈 때 센서가 반응하여 보여주는 몸짓은 한편으론 에로틱한 조형성을 보여주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지극히 절제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Source of Z>를 보면서 곧 바로 신라의 “반가사유상”을 떠올렸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일까?
임성훈(Ph.D.)